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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행설의 성립과 발전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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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행설의 성립과 발전

베지멀 2021. 3. 5. 09:00

오행설(五行說)이 어느 시기에 탄생하였는가 하는 문제는 상서(尙書)등 고문헌의 진위와 관계되어 매우 복잡한 문제이다. 그러나 고문헌의 내용을 그대로 인정한다고 할 때 '오행(五行)'이라는 단어는 시기적으로 상서에 최초로 나온다. 상서에서 오행을 언급하고 있는 부분이 「감서」와 「홍범」 두 편이다. 상서의 이 두 편을 제외하면 시경, 역경, 노자, 논어, 맹자 등에 모두 오행이라는 글자는 나오지 않는다. 상서 이후에 오행이라는 단어는 「좌용」과 「국어」 에 최초로 나온다. 오행의 내용인 木ㆍ火ㆍ士ㆍ金ㆍ水가 나타나는 문헌은 시기적으로 상서의 「대우모」가 가장 앞선다. 그러나 「대우제」에서는 水ㆍ 火ㆍ 木 ㆍ 金ㆍ土와 穀을 합해 육부라 하여 철학적 의미를 갖춘 오행이 아니라, 인간 생활을 편리하게 하는 의미의 오종 물질을 지적하고 있으며, 또한 「대우모」는 고문 상서에 속하는 것으로 공인된 위서라는 것이 정설이므로 타당성이 결여되어 있다. 「감서」와 「홍범」에 나오는 오행에 대하여 알아보면, 먼저 「감서」에 오행이라는 단어에 대해서는 水ㆍ火ㆍ木ㆍ金ㆍ土 五行이라 하기보다는 반드시 행해야 할 5가지 도리 정도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으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별다른 의의 없이 水ㆍ火ㆍ木ㆍ金ㆍ土 五行이라 말하고 있다. 「홍전」은 은말주초의 기자가 주무왕에게 치읍국의 도(道)에 대하여 대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저술 시기에 대하여는 여러 견해가 있으나 은주의 교체기인 은말주초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며 여기에서의 오행은 명확하게 水ㆍ火ㆍ木ㆍ金ㆍ土 五行을 지칭한다. 때문에 「홍범」을 五行이라는 단어와 水ㆍ火ㆍ木ㆍ金ㆍ土라는 五行의 내용이 함께 나오는 최초의 문헌이라 할 수 있다.

오행설은 음양설과 별도로 출발했으나, 추연과 제나라 직하음양가들에 의해 이미 보편화되어 있는 음양설과 결합되면서 활성화되기 시작했으며 이후 여불위의 여씨춘추에 의해 일차 정리된다. 특히 추연은 음양과 오행을 결합하기 시작하였고, 오행 상극에 의한 오덕종시설을 만들어 이 설은 이후 왕조 변천의 이론적 근거로 활용되었다. 추연의 뒤를 이어 음양오행설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킨 사람은 서한의 재상동중서이다. 추연이 제창한 상승설은 오덕의 순환에 따른 역사순환론적인 성질의 것이었는데 동중서에 와서는 이웃해 있는 것끼리는 상생하고 건너뛰어 있는 것끼리는 상극한다는 생과 극의 법칙 개념이 형성된다. 동중서가 저술한 춘추번로는 전통적인 유가류로서 유교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당시 방만하게 유행하던 술법적 측면이 많이 배제되어 오행설과 함께 유행하던 잡술법을 타파하려는 의지를 내포하고 있다고 평가된다. 동중서에 의해 세밀해지고 체계화된 음양오행설은 다시 유향, 유흠 부자에 의해 완성된다. 유향은 「곡양춘추」를 지어 화복을 점쳤으며, 아들 유흠은 오행 상생에 입각한 오덕종시설을 창안하고 「오행전」을 지어 한대의 음양오행설을 완성하였다.

<출처:픽사베이>

오행에 물상이 대비되어 있고 윤하, 염상, 곡직, 종혁, 가색 등 각 오행의 특징이 상세히 나타나 있다. 또한 오행의 속성에 오미(五味)가 배정되었다. 그러나 어떻게 윤하의 성질이 짠맛을 내는지는 분명치 않다. 「홍범」의 성립 시기로 보아 전국시대 전후로 이미 이 시기에 오행에 대한 일반적 개념이 성립되었다고 볼 수 있다. 추연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문헌은 여씨춘추로서 고대의 천문학적 지식에 대한 일대 정리이면서 또한 오행 관념을 체계적으로 기록한 최초의 전적이다. 이 여씨춘추는 여불위가 식객들을 모아서 편찬한 것으로, 여불위가 자살하기 4년 전인 B.C.239년에 완성되었으며, 내용은 12기, 8람, 6론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 중 12기에 오행설이 나타난다. 특히 추연이 오덕종시설 등의 이론체계를 세웠지만 문헌적인 근거와 시대적 부흥은 새로운 정치사상이 필요한 주과 여불위에게서 시작되었다. 즉 오행, 천문, 율력, 풍습 및 정치적 이상을 하나의 완전한 체계로 조직한 것은 여씨춘추 「십이기」이다. 12기는 1년 12달의 자연현상을 기록한 것으로 61편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春ㆍ夏ㆍ秋ㆍ冬 사계절을 맹ㆍ중ㆍ계로 나누어서 기록함으로써 12기가 되었다. 관자에는 「유관편」 「사시편」 「오행편」 「수지편」의 4편에서 오행설을 논하고 있으며 체계화되기 시작하는 오행설의 초기 개념이다. 그 중 「유관편」에는 木ㆍ火ㆍ土ㆍ金ㆍ水의 오행에 관한 표현은 없고, 「사시편」에는 오방을 기준으로 하여 日ㆍ月ㆍ星ㆍ辰과 時ㆍ氣ㆍ德ㆍ體ㆍ天干을 배속시키고 있으며, 「오행편」에는 木ㆍ火ㆍ土ㆍ金ㆍ水의 오행에 대한 표현이 나타난다. 오행 개념은 처음에 상서尙書 「홍범洪範」의 정의에 의해 첫째 水, 둘째 火, 셋째 木, 넷째 金, 다섯째 土로서 水는 적시고 내려가는 특성, 火는 타면서 올라가는 특성, 木은 굽고 곧은 특성, 金은 따르고 바뀌는 특성, 土는 심고 거두는 특성을 나타내었다. 즉 다섯 가지의 요소가 각각 고유의 특성을 가지고 있게 되며 이후 동중서 등을 거치며 오행의 이론체계인 상생상극 등이 가미되어 현재의 일반화된 통념으로 정리되어 갔다.

참고문헌 : 한규진, 2017, 韓國傳統의 四柱 分析에 대한 硏究, 원광대학교 동양학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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