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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에서 사주명리학의 형성과정 본문
현대 명리학은 고전 명리학을 발판으로 유입되는 해외(일본과 중국)의 명리학을 통합하면서 새로운 내적인 발전을 꾀하게 되었다. 이 시기가 2000년 이후라고 생각된다. 명리학의 발전 요인은 첫째로 명리학을 철학적 바탕으로 이론화하게 되었다는 점, 둘째로 대학에서 전공 학과의 하나로 설정되었다는 점, 셋째로 출판문화의 발달에 힘입어 새로운 직종으로서의 적지 않은 사설학원 교재의 발간이 빈번해졌다는 점 등이다. 사실 '사주학'은 아직 철학적인 이론을 마련하지 못한 개념이다. '고전 명리학'이라고 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이와 비교하여 '명리학'은 이제 나름대로 철학적인 바탕을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命理(명리)'는 '性理(성리)'에 대응하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한문학이나 유교학에서 '성리'의 상대 개념으로 모색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유학이나 한문학을 전공한 학자들은 '성리'의 하위 개념이나 아예 종속 개념으로 보려는 듯하다. 그러므로 학계보다 일반 명리학을 연구하는 모임에서 '명리'를 '성리'의 대응 논리로 보려는 성과가 있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논객이 최국봉(崔國峰, 1945- )이다. 오늘날까지 그는 '성리=명리'라는 등식을 구조화하기 위해 지속적인 학술 활동을 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활동의 하나(한국동양운명철학협회와 동양철학회의 회장을 지냈고 현재는 총재직에 있다)가 명리라는 학회지를 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명리는 2002년 5월 10일 자로 창간호를 시작으로 현재는 제44호(2010년 가을)로 지속되고 있다. 책 제목의 글자는 최국봉이 썼고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명리의 성격을 알기 위하여 '성리'에 대응한 '명리'의 학술적인 연구 성과는 김영호[2008J의 명리학 특강:성리로 본 범주론적 명리 체계[논형]에서 체계를 완성한다고 할 수 있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은 한의학의 중요 개념이라는 점이다. 한의학에서 죽고 사는 문제, 즉 명리를 규명하려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로 여겨진다. 그러나 한의학에서는 이러한 학문적 연구 성과물이 나오지 않았음에 유감이 아닐 수 없다.
'명리'가 학문으로서의 '명리학'으로 확실한 위상을 확보한 것은 국립 공주대학교 대학원 과정에서 '역리학과'가 설립(2003)되었다는 점이다. 사립대학에서도 이러한 설립 시도가 있었으나 아직 평생교육원 차원에 있었다. 명리학이 발전기에 접어든 것은 '명리학 전공'으로 학위 전공자가 배출됨으로써 공인적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공주대학교대학원 과정에서 명리학 전공이 설정되기 위해서는 10여 년이라는 준비와 인내의 기간이 필요했다. 대학에서 소위 '미신'으로 치부되는 '역리학'은 '초자연현상연구회'가 구성되어 초자연현상이란 학술지를 냈던 것이다. 이것이 바탕이 되어 협동과정으로 대학원 석사 과정이 출발하여 2010년 박사과정으로 확장된 것이다. 이후 경기대학교, 원광대학교, 동방대학원대학교 등 사립대학교의 대학원을 중심으로 명리학이 설립되고 전공 연구자들이 배출되기 시작했다. 명리학 관련 학위 논문은 2002년에 원광대학교 동양학대학원 석사과정에서 처음으로 이루어진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출판사 동학사의 출현이다. 그동안 명문당이 맡아 오던 명리학 저작물을 새로운 차원에서 발판을 구축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명문당은 한자 세대에 알맞은 시스템이었다. 한글세대를 위한 명리학적 구축이 필요했던 것이다. 동학사로 대표되는 이들 저자들은 모두 자신의 이름을 밝히며 집필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초창기 명리학 서적은 출판사 편집부가 주로 담당하며 '자해' 즉 스승이 없이 스스로 독학하라는 의미가 있었다. 그 다음 시기는 대개가 필명으로 교재용 명리학 서적이 출간하였다. 명문당을 중심으로 한 몇몇 사람들의 활동이 이러한 저작 출판 형태를 바꿔놓았다. 그러다가 2000년에 들어서면서 동학사를 대표하는 출판시스템이 제공된 것이다. 명리학 관련 전문가 혹은 동호인 인구가 100만 명이 넘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추측이다. 그리고 대학교의 전공학과, 평생교육원, 사회교육원의 수강생 등 명리학의 수요가 늘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리학 관련 책들은 학원 강습 교재 정도나 임의 학회별로 기관지를 만드는 수준에 머물렀다. 명리학 연구를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아우르는 전문 학술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전문 연구자들은 다른 학문 영역에 보조 혹은 변두리 과목으로 '전세 신세'를 변하지 못하였다. 말하자면, '독립 주택'을 가질 필요가 대두된 것이다.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명과학 연구가 2013년 5월 30일 자로 창간호를 내게 되었는데 매년 5월과 10월, 6개월 단위로 발행하기로 정기 간행물 허가를 내었다.
참고문헌 : 한규진, 2017, 韓國傳統의 四柱 分析에 대한 硏究, 원광대학교 동양학대학원